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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호태왕비

기순 2006. 10. 12. 16:26

태왕비(인용글-편집)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비를 중심으로 사서의 기록과 연결해서 고대국가의 지명과 위치를 알아 봅니다.

 

광개토왕은 374년에 태어났으며 이름은 담덕(談德)이고 재위시에는 호태왕(好太王) 또는 영락태왕(永樂太王)으로 불렸으며 묘비에 연호는 영락(永樂)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시기에 백제 근초소왕 사망함


광개토대왕비는 광개토왕의 업적과 훈적을 기리는 송덕비로 광개토왕 사망 2년후에 장수왕이 국내성에 세운것으로 당시 고구려의 천하관과 발전과정은 물론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비석입니다.

비석은 현무암질 화산암에 예서체에 가까운 필체로 44행 1775자의 문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와 더불어 당시 고구려사를 밝혀주는 금석사료입니다.
 

광개토왕의 시호인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라는 글을 보면 광개토경과 평안은 각각 외정(外政)과 내치(內治)의 업적을 표현한 말이고 호는 미칭이고 태왕은 제왕의 칭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구려의 왕의 호칭은 태왕(太王)이란 제왕 중의 제왕이란 뜻으로 황제(皇帝)를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연호를 사용하는데 영락(永樂)은 광개토왕의 연호로 바로 고구려가 대륙의 패자(覇者)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광개토왕은 22년간의 재위기간에 남정북벌(南征北伐)을 개시하는데 서북으로는 요하를 넘어 대흥안령 남록의 시라무롄강 유역까지 진출해 거란족을 정복하고 서남으로는 후연(後燕)을 공격하고 동북으로는 동부여(東夫餘)를 복속시켰습니다.

여기서 후연은 고구려와의 전쟁과정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붕괴되고 고구려인 고운(高雲)이 왕위에 오르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향력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의 <자치통감>에 기록이 있음

 

그 이유는 영락 17년 광개토왕이[북연왕 고운에게 종족(宗族)의 예를 베푸니 고운이 사신을 보내 보답했다]라는 기록에 잘 나타납니다.

이는 고구려와 북연(北燕)의 관계가 천자국과 제후국의 종법적 관계로 북연을 신하국으로 삼았음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광개토대왕문에 나오는 지명을 해석해 보면 각국의 위치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비문의 내용(요약)

북부여 천자의 아들 추모왕의 후손으로 18세에 등극하여 39세에 서거 하였으며  5년에 부산, 역성, 북평을 순시하였고 신라 백제를 속국으로 하였으나 배반하였다. 6년에 백제를 쳐 58성 700촌을 평정하였고 8년 숙신을 순시하였다. 9년 백제가 맹세를 어기고 왜와 함께 침범하므로 신라는 고구려대왕께 구원을 요청하였다.10년에 기병 5만으로 신라를 구원하여 왜를 격퇴하였고 신라인들이 조공을 하였다.

 

14년 왜가 대방 석문까지 침범하였으나 이를 격퇴하였다.17년 기병으로 여러 성을 평정하였다. 20년 추모왕부터 복속되어 있던 동부여를 다시 평정하였다.

 

왕이 돌아가시니 수묘인을 두고 지키는데 광개토대왕 이전부터 있던 한반도의 비리성에서 수묘인을 뽑았다. 신구민을 섞어서 수묘인을 두었다.

 

 

 지도- 광개토대왕비문의 지명도

   

고구려의 신대왕 5년에 평정한곳이 부산(富山)인데 중국대륙에 '요'의 동쪽으로 부성(阜城)이 있고 아차성(阿且城)은 <삼국사기>에 기록이 있는데 사성, 대방, 한성, 숭산, 하수등과  동일지역에 있다고 하는데 중국대륙의 '요'동쪽에 하수, 숭산, 대방이 지금도 있다.

 

산(太山)은 <삼국사기>의자왕전에 나오는데 웅진의 동쪽에 있다고 했는데 국대륙의 하수 동쪽에 태산이 지금도 있으며 석성(石城)은 <삼국사기>에 석문 남쪽으로 임성(林城)은 하수의 아래 백마하 동쪽에 있다고 합니다.

 

대방(帶方)은 <삼국지>에서 <당서>까지 '동이전'에 등장하는데 각국의 위치결정에 중요 지점으로 석문과 접하는데 지금도 '요'의 동쪽에 석문이 있습니다.

 

<삼국사기>의 기록과 광개토대왕비문의 대외관계에 대해서 비교해 보면 '고구려본기'에는 광개토대왕때 전쟁기록이 없으나 비문(碑文)에는 있고 '신라본기'에는 서라벌신라와 왜 전투기록이 있으며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와 '연'의 전쟁기록이 있으나 비문(碑文)에는 '연'에 대한 기록이 없고 만 17년 전쟁기록이 나옵니다.

 

한 <삼국사기>는 거란의 정벌기록이 있고 비문(碑文)는 '동부여' 평정기록이 있습니다.

 

즉, 고구려의 광개토왕시기에 백제와 서라벌신라를 복속시켰는데 백제와 왜가 서라벌신라를 침범하자 서라벌신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백제와 왜를 제압하고 동부여(거란)를 평정합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광개토왕은 한반도부터 중국대륙 '요'의 동쪽 황하이남까지 통치하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도- 참고지도(태행산맥: 붉은색 막대)

 

광개토대왕비문을 통해서 한(韓)민족 인물의 시대별 중국대륙의 활동지역을 살펴 보겠습니다.

 

국시대의 치우(蚩尤)는 탁록에서 헌원과 전쟁를 했으며 산동성 동평군에 능이 있고 고조선시대의 기자는 서화에 살았고 서화는 하남성에 있고 기준이 위만에게 쫓겨 해(海)로 가서 한(韓)을 다스렸고 '해'지명이 있는 곳은 회수(淮水)입니다.

 

고구려시대는 모본왕 4년에 고구려가 한(漢)의 북평(北平), 태원(太原)을 평정하였고 보장왕때는 당(唐)과 전투지명으로 신성, 고대인성, 은산이 있고 후기신라시대 장보고의 법화원이 산동성 청해위지역에 있습니다.

 

고구려 강역을 만주와 한반도로 국한 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나 광개토대왕의 비문은 고구려가 양자강 유역까지 다스렸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후한서>는 광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서라벌신라, 왜, 백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는 391-412년까지 22년의 업적을 기록한 것인데 이 시기에 기록된 사서로는 비석을 세우기 이전의 <삼국지>가 있고 <후한서>는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진 이후의 기록으로 광개토왕 전후에 편찬 사서로서 광개토왕시대의 고구려 강역과 주변국가를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입니다. 

 

개토왕시대 고구려와 백제의 위치는<삼국지> <후한서>'동이전'의 위치 배열과 지명으로 중국대륙에 대입하면 모두가 일치되고 있다.

 

<삼국지>'동이전'의 위치

읍루--  在夫餘東北千里南與北沃沮接

선비--  烏丸鮮卑卽古所謂東胡也

부여--  在長城之北去玄兎 南與高句麗 東揖婁西與鮮卑接 北有弱水

고구려--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朝鮮濊貊 東與沃沮北與夫餘 接到還都西安平

동옥저--  在高句麗 蓋馬大山之東北與揖婁 夫餘南與濊貊接東北狹西南長

예--  南與辰韓北與高句麗沃沮東窮大海 箕子地 漢四郡地

한--  在帶方之南東西以海南與倭接海

왜--  在帶方東西南大海之中 朱崖南越

 

<후한서>의 위치

읍루고숙신--  在夫艅東北千里東窮大海南與北沃沮

부여--  在玄兎北千里南與高句麗東與邑婁 西與鮮卑接北有弱水

고구려--  在遼東之東千里 南與濊貊朝鮮東與沃沮 北與夫艅接句驪一名貊耳

동옥저--  在高句麗蓋馬大山之東 東窮大海北與邑婁夫艅 南與濊貊接

낙랑군--  更始土人王調殺郡守劉憲自稱大將軍樂浪太守王遵擊之郡使殺調降

예--  北與高句麗沃沮南與辰韓東窮大海西至樂浪

한--  馬韓, 北與樂浪南與倭接  辰韓, 北與濊貊接海  弁辰, 在辰韓之北亦與倭接

왜--  在帶方東南大海中 會戒東冶縣 夷洲 壇洲 朱崖 南越

 

 

                                                    

도표- 배열도(삼국지,후한서로 배치)

 

<삼국지> <후한서> '동이전'에 의하여 배열도를 작성하여 보면 중심축이 만주와 한반도로 인식되지만 배열표에 지명을 대입하여 보면 중심축은 한반도가 아닌 중국의 '요(遼)'의 동쪽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명이 요(遼)의 동쪽에서 발견되고 고지도인 '우적도'와 현재의 지도에서도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 요동의 위치

http://blog.naver.com/casahoo/20001306108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족(東夷族)의 위치배열은 동일하며 고구려의 활동지명이 나오고 이런 지명은 한반도에는 없고 중국대륙의 태행산맥의 동부와 남부에 위치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구려, 백제의 국가가 존재했던 시대에 비문의 지명 또한 <삼국지> <후한서>에 나와 있는 동이국가의 지명은 한반도나 만주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적도(禹迹圖)'에도 고구려 강역인 영(營) 평(平) 북평(北平) 태원(太原)이 있는 남쪽지역에 개토대왕비문에 등장하는 지명으로 보이는 것이 있으니 역성(歷城)이 있고 임성(林城)과 대산(大山)즉 태산(泰山)이 있고 석문(石門)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에서 서라벌신라, 백제, 가야, 왜의 위치는 <삼국지> <후한서> <당서>와 '우적도'에서 중국의 동부지역으로 확인되고 있고 지명에 의해서도 하수(황하) 남북으로 볼 수 있으니 광개토대왕비에 의한 강역은 하수(황하)에서 한반도까지를 고구려의 강역으로 보아야 한다. 

 

                                                                  

지도- 참고지도(백제, 왜, 신라의 위치) 

 

광개토왕시대 이전에 서화, 항성 동쪽에 한(韓)이 있고 예(濊)는 '요(遼)'의 동쪽에 있었고 백제는 한반도에 없고 서화, 항성 동쪽에 있고 백제의 한성은 '요(遼)'동쪽 황하(하수) 유역에 있었습니다.

 

한 백제의 웅진은 산동성 비성(肥城)이고 사비성은 평원, 황산, 백마, 대산이 있는 곳에 있었다.

참고- 백제의 한성,   백제의 웅진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34088

http://blog.naver.com/casahoo/20001634443 

 

요(遼)의 동쪽지역에는 백제와 고구려가 패망할 때의 지명이 현존하는 것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힘들며 고지도와 현재의 지도 그리고 사서를 종합하여 검토해야 될 것입니다.

출처 : 가정행사 도움이집
글쓴이 : 정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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