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설교 - 꿈이 있는 삶/ 창 37:5~11
( 상도중앙교회 박봉수목사)
창 28장을 보면 야곱의 벧엘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서 멀리 하란으로 도망치다가 한 들판에서 돌베개를 만들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꿈에 사다리를 보았습니다. 땅에서부터 저 하늘까지 이어진 사다리였습니다. 그 사다리 위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여호와께서 그 사다리 위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는 여호와다 네게 복을 줄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축복의 약속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벧엘의 경험 뒤에 야곱의 마음속에는 저 하늘을 향하는 사다리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다리 위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다리 위에서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본 그 사다리가 이제 야곱의 일생의 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 꿈을 가지고 늘 그 사다리를 오르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종탑의 조형물은 바로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꿈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야곱처럼 꿈을 가지고 살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입니다. 꿈을 꾸되 저 높은 곳을 향한 꿈을 꾸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 조형물을 이름 하여 “야곱의 사다리”라 했습니다.
꿈의 사람
오늘 본문은 요셉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요셉은 한 마디로 꿈의 사람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1. 꿈이 있는 사람
요셉의 생애는 꿈으로 가득한 생애였습니다. 어려서 꾸었던 꿈을 평생을 통해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늘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에서 형이고, 다른 하나는 야곱 형입니다.
에서는 호방한 사나이였습니다. 장자였고 가진 것도 많았습니다. 남자답게 사냥을 좋아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는 것마다 잘 됐고 주변에 사람도 많았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 만족하게 됐습니다. 오늘에만 몰두하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꿈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안소니 라빈스라는 분이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보면 오늘 현대인을 한 마디로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사람들은 원래 누구나 다 꿈을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살면서 그 꿈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모두가 에서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사람들이 꿈을 잃어버리게 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하나는 좌절 때문입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다가 장애물을 만나게 됩니다. 이 장애물을 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 보다가 잘 안 될 경우 좌절을 겪게 됩니다. 이 좌절이 하나씩 쌓이면서 꿈과 점점 멀어지게 되고 끝내는 꿈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눈앞의 성공 때문입니다. 꿈을 향해 나아가다가 꿈과 관계없는 손쉬운 성공을 맛보게 됩니다. 그 성공의 달콤함에 젖어서 원래 가지고 있던 꿈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십니까? 아직도 꿈이 있습니까? 에서처럼 꿈을 잃어버리시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에서와는 달랐습니다.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 여자처럼 조용히 집안일을 하며 엄마와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뭐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것도 없었고 주변에 사람도 없었습니다. 별로 매력도 없고 능력도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꿈이 있었습니다. 오늘에 타협하거나 오늘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그날을 준비하고 기다렸습니다.
야곱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오늘에 몰두해 살던 에서에게 장자권을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자였던 에서를 대신해서 야곱을 족장으로 세우셨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에 참여케 되었습니다.
휠렌바흐(Fuellenbach)란 분이 쓴 “불을 놓아라”라는 시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보다 노래를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지금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간직한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글을 잘 쓰는 작가보다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꿈을 안고 사는 이가 더 아름답습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보십니다. 능력은 있으나 꿈을 잃어버린 에서보다 능력은 없어도 꿈을 가지고 있던 야곱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그 야곱을 택하셔서 위대한 일을 맡기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꾸는 사람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사람들 보기에도 아름답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꿈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꿈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2. 꿈을 나누는 사람
오늘 본문의 요셉은 자기가 꿈을 가질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옥에서 만난 애급의 관원의 꿈을 해몽해 주면서 그에게 새로운 꿈을 갖게 했습니다. 절망 중에 있던 애급의 왕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면서 새로운 꿈을 갖게 했습니다.
짐 스토벌이라는 사람이 쓴 [최고의 유산 상속받기]라는 책을 보면 월트 디즈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친구는 사는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꿈을 가지고 있었고, 한 꿈이 이뤄지면 또 다른 꿈을 꾸며 살았어. 그 친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꿈이란 어떻게 꾸는 것인지 더 멋진 세상은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지. 그 친구 이름이 바로 월트 디즈니야”
월트 디즈니는 어린이에게 꿈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만화 영화를 만들어 꿈을 보여주었습니다. 디즈니랜드를 만들어 어린이에게 꿈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꿈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래야 합니다. 내가 꿈을 간직할 뿐 아니라 그 꿈을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들에게 꿈을 꾸게 해 주어야 합니다.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꿈을 되찾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꿈
요셉이 꾼 꿈은 남다른 꿈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꾼 공상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간직한 백일몽, 헛된 꿈이 아닙니다. 그의 꿈은 아주 다른 꿈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꾸어야 할 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1. 하나님께서 주신 꿈
본문 5절을 보면 “요셉이 꿈을 꾸고...”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은 무엇입니까?
사전을 찾아보면 꿈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잠자는 동안에 생시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하는 여러 가지 현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태몽이니, 용꿈이니, 개꿈이니 하는 것들을 말합니다. 대개 이와 관련된 표현으로 “꿈을 꾼다.”는 말을 씁니다.
다른 하나는 마음속의 바람이나 이상을 말합니다. 큰 꿈이 있다고 말할 때 그 꿈을 뜻합니다. 대개 이와 관련된 표현으로는 “꿈을 가진다, 꿈을 품는다.”라는 말을 씁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꿈은 앞의 꿈 즉 잠자는 동안에 일어난 현상으로서의 꿈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꾸고 싶어서 꾼 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서 요셉의 미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꿈은 요셉의 평생 그의 마음속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요셉이 이 꿈대로 되었음을 확인하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은 어린 시절 꿈에서 보았던 그것이 정말 요셉의 평생의 꿈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평생 간직하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욜 2: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성령이 우리 심령 속에 오신 뒤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날 특별한 현상 가운데 하나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장래 일을 말하고, 젊은이는 이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나면 성도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성령이 주시는 꿈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고 난 뒤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새로운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행 1:8 말씀 그대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 주님의 증인이 되는 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른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2.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꿈
요셉이 어려서 꾸었던 꿈은 긴 세월이 흐른 뒤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창 45:7-8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급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그가 어려서 꾸었던 꿈, 그가 한 평생 마음에 간직해 왔던 꿈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꿈은 자기 개인만을 위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꿈이었습니다.
역사가들은 지난 20세기 인유의 인권과 자유와 평등을 신장시킨 결정적 인물로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손꼽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특별히 1963년 미국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의 시위집회는 흑인 인권 신장의 하나의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그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그가 암살당하고 난 뒤에 미국 정부는 그의 생일을 미국의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를 이렇게 위대한 인물이 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꿈입니다. 그는 1963년 시위집회에서 저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I Have a Dream]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개인적 차원의 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이루는 꿈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이 민족 역사를 위한 꿈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다 큰 꿈을 꾸십시오. 개인적 차원, 사라사욕의 꿈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꿈, 하나님 나라를 위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3. 고난으로 이루는 꿈
요셉은 그 꿈 때문에 큰 고난을 겪었습니다. 어려서 꾼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 꿈 때문에 애급에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꿈을 간직하고 사는 동안 꿈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했고 심지어 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끝까지 견디고 이겨냄으로 꿈이 이루어지는 그 복을 누리게 됐습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 전혀 새로운 꿈을 갖게 됐습니다. 아나니아 선지자를 통해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기도하던 중에 환상 가운데 다시금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꿈을 갖게 된 뒤에 그동안 간직해 온 모든 꿈을 정리했습니다.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이제 새로운 꿈만을 향해 결단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감당키 어려운 고난이 앞을 가로 막습니다.
고후 11:23절 이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시고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바울은 이 모든 고난을 이겨낸 뒤에 그 꿈이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대나무는 씨앗을 심은 후 4년 동안에는 죽순만 하나씩 돋아난다고 합니다. 4년 동안 땅 속에서는 뿌리가 잘 자라나 튼튼하게 뿌리를 땅에 박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5년 째 되는 해에는 갑자기 25미터나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꿈은 고난을 먹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습니다. 고난 없는 꿈은 백일몽일 뿐입니다. 고난의 댓가가 지불되지 않는 꿈은 헛된 꿈으로 끝이 나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 126:5-6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다른 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꿈입니다. 비록 고난이 다가 온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꿈입니다. 늘 꿈을 간직하며, 꿈을 나누며, 그리고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