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승부는 여성이 쥐고 있다” | ||
[주간조선 2005-12-13 15:47] | ||
김미경 미래여성연구원장 기업들 섭외 0순위인 인기 프로 강사... 여성마케팅 중요성 전파하며 우먼파워 과시
김미경(41) 미래여성연구원장은 2년 전부터 자신이 직접 만든 노트북 가방을 들고 다닌다. 모양이 마음에 드는 가죽 서류가방을 사서 충격 완화제로 스펀지를 깐 후 노트북을 넣어 다니는 것이다. 이 남다른 가방을 눈여겨본 주변의 여성들로부터 “어디 가면 살 수 있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노트북 회사들이 만들어온 노트북 가방은 여자들 입장에서는 끔찍한 물건입니다. 완전히 남성 중심의 사고가 배어있는 가방이지요. 멋을 따지는 여자들이 그 투박한 물건을 어떻게 메고 다닐 수 있겠어요.”
김 원장의 이런 문제의식이 통했는지 작년에 삼성전자는 여성용 노트북을 표방한 ‘레드 노트북’(센스 Q30)을 선보이면서 가방 전문 브랜드 루이까또즈와 함께 ‘루이까또즈 패션 노트백’을 만들어 여성 고객에게 증정하는 마케팅을 펼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노트북 시장에서도 차별화된 ‘여성 마케팅’이 등장한 것이다.
1시간 강의료가 200만원에 이르는, 국내 최고의 여성 강사인 김미경 원장에게 지금 화두는 여성 마케팅이다. 지난 몇 년간 대기업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강의에서 여성 마케팅의 중요성을 줄기차게 강조해왔고 그간의 강의록과 대기업 마케팅 담당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여성 마케팅’(위즈덤하우스 간)이라는 책도 12월 중순 출간할 예정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강한 쇼핑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이미 상당수 제품의 구매 결정권이 여성에게 넘어간 게 현실. 미국의 ‘미디어마크 리서치 앤 인터렙(MediaMark & Reseach Interep)’의 통계(2002년)에 따르면 가구의 94%, 휴가와 여행관련 상품 92%, 주택 91%, 가전제품 51%, 자동차 60%, 은행계좌 선택 89%를 여자가 결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도 남성 전유품으로 알았던 자동차 구매에서조차 “아내가 허락하지 않은 차를 구입할 수 있는, 간 큰 남편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여성의 구매 파워는 대단해지고 있다”는 것이 김 원장의 진단이다.
“우리도 여성 경제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하면서 돈 쓰는 여성이 늘고 있습니다. 여성 창업자들이 해마다 6% 이상 늘고 있고, 실제 40대 중반 이후 남성이 직장을 나오면 여성이 경제 주도권을 쥐는 사례도 많습니다. 특히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구매력이 상승합니다. 50세 이후 남자는 거의 다 아내가 사다주는 대로 먹고 입습니다.”
김 원장은 특히 기업에 ‘여성 10% 시장’을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여성 고객이 저변에 깔리기 시작할 때 여성 마케팅 전략을 발휘하지 않으면 기업이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예컨대 호텔은 이미 ‘여성 10% 시장’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객실에 비치된 화장품은 온통 남성용일 만큼 아직 남성 중심 마케팅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여성 전용층(lady’s floor)을 운영하는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처럼 호텔업계에서도 이제 여성 마케팅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주장이다. 자동차, 골프, 주류처럼 전통적인 남성 중심 시장이 깨지면서 여성 고객이 새로 진입하는 시장이야말로 여성 마케팅이 중시될 대상이라는 것이 김 원장의 주장이다.
김 원장이 여성 마케팅에 무신경한 대표적인 업계로 꼽는 게 자동차 시장이다. 여성 자동차 등록자가 전체의 20%를 돌파했고 서울 강남, 분당에서처럼 세컨드 카(second car)의 구매에서는 여성 결정권이 뚜렷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아직 기본 마케팅 전략은 남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신차 발표회 때면 영락없이 섹시한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자동차와 섹스’라는 컨셉트 자체가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기분 상하는 일입니다. 차라리 젊은 아빠와 애들을 등장시키는 게 낫지요.”
김 원장에 따르면 이미 외국 자동차업계에서는 여성 마케팅을 넘어 여성 전용차도 현실화되고 있다. 올해 출시된 볼보의 ‘YCC’는 여성에게 편한 몇 가지 사양을 장착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기획, 디자인, 생산과정, 출시에 이르기까지 100여명의 여성이 만들어낸 차다.
이 차는 여성이 자동차의 관리나 수리를 위해 보닛을 여는 일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착안해 차의 후드를 아예 없애는 등 여성의 감성과 눈으로 차를 만들었다. 또 외국에서는 여성 운전자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자동차 수리 업계에서도 여성 마케팅이 구사되고 있다고 한다.
세계적인 자동차 정비업체인 지피루브(Jiffy Lube International Inc.)는 여성이 차 안에 그대로 앉아서 원하는 서비스를 다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블루 오션’을 캤다. 여성 마케팅을 강조해온 김 원장의 조언은 요즘 실제 기업 현장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지난 여름 문을 연 신세계 본점의 경우 남성 화장실에도 아기 기저귀 갈이 시설을 설치했고, 남성 전용 카페도 문을 열었다. ‘쇼핑의 방해자’로 돌변하는 남성이 여성이 돈 쓰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조언을 실현한 것이다.
최근 TV 전파를 타고 있는 삼성 래미안 아파트 CF에서 외국 출장 중인 탤런트 장서희가 원격 조종 화면으로 아이에게 잠을 청하는 장면은 “‘유비쿼터스 아파트’라는 어려운 기술 용어에 스토리를 담아 감성을 움직여야 여성 고객을 잡을 수 있다”는 김 원장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기업을 대상으로 10여년간 직장 여성의 ‘프로의식’ ‘리더십’ ‘성희롱ㆍ성차별 문제’ 등을 강의해온 김 원장은 ‘대한민국 여성들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임을 자부한다. 한 달 평균 60건, 8000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면서 생생한 육성과 데이터를 축적해온 결과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나온 김 원장은 대학 졸업 후 광고회사인 ‘강 프로덕션’에서 CM송 제작을 하다가 ‘프로 강사’라는 직업을 개척한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어느 날 프로 강사라는 사람의 강의를 듣고 벼락맞은 듯이 저게 천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중앙대 산업전문지도자 과정을 다니며 준비를 했죠. 그리고 증권사 상장기업 목록에서 알 만한 기업들을 추려 제 브로셔를 일일이 보냈습니다. 우표 값만 100만원이 든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 원장의 첫 강의는 1994년 대우자동차 부평공장에서 여직원들을 상대로 ‘여성의 프로의식과 직업관’에 대해 말한 것이었다. 지금은 어떤 주제를 접하더라도 “2시간을 10분처럼 느끼게 말하는 재주”가 있지만 당시에는 A4용지 10장 분량의 글을 적어 열흘간 달달 외워갔다고 한다.
이후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퍼지면서 2시간 강의에 10만원을 받던 병아리 강사는 지금 1시간에 200만원의 돈을 받는 최고 강사로 성장했다. 요즘은 삼성전자, 하이닉스 반도체 등 대기업 여성 간부들을 상대로 ‘남성 임원과 전략적으로 친해지는 프로그램’을 주로 강의하고 있다.
“자기 일만 챙기지 직장 남성들과 파트너십을 맺는 데 서툰 여성 리더들과 의리, 폭탄주만 아는 남성 리더들을 연결해주는 가교 역할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내년부터는 ‘W(woman)·insights’라는 회사를 차려 본격적으로 여성 마케팅 컨설팅과 여성 리더 육성에 나설 계획이다.
정장열 주간조선 기자(jrchung@chosun.com) |